삶은 가치가 있다.
산다는 건 각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문득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18살 때는 삶을 제대로 살지도, 살아 본 나이가 아닌데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죽음이 뭔지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왜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 당시는 사는 게 힘들다고 느꼈다. 무엇이 힘든지도 모르면서 힘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언제 사라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생각하면서 사는 나 자신이 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이 학창시절보다 더 힘들다.
모든 것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당시 나는 왜 죽고 싶었을까? 무엇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청소년기에 누구나 품게 되는 삶과 죽음을 고민했던 것 일까?
지금은 왜 이렇게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걸까?

“소중한 사람이 많이 죽었으니까 인간은 저세상이나 천국을 발명한 거야. 죽는 건 언제나 상대방이고 자신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살아남은 자는 죽은 사람들을 그런 관념으로 구원하려한 거야. 그래서 나는 모두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저세상도 천국도, 모두 인간이 생각해낸 허구일 뿐이야.”
(카타아먀 쿄이치 지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작품 2003, 197쪽)
영겁을 산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죽지 않는다면 세상을 재미가 있을까?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처럼 400년을 산다면 인생을 어떤 의미로 느낄까?
유한하기에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사후의 세계는 누가 만들어 낸 것일까?
사랑했던 사람이 무한한 세상에서 자신을 기다려주길 바라서 만든 미지의 세계일까? 허구의 세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