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뭘 잘하세요?
나는 태생적으로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음~ 뭐랄까?
어려서 명절에 큰집을 가는 건 나에겐 괴로운 일이였다. 일명 명절증후군
명절에 차를 타고 가면-당시에 승용차가 없어서 대중교통으로 큰집을 가던 시절이였다- 나는 무조건 멀미를 했다.
장시간 차에 시달리고 멀미에 정신을 못 차리고 큰집에 도착을 하면 큰아버지는 꼭 한마디 ‘암자구’(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뜻) 라 하시면서 다 큰 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하셨다.
쓸모없다고 생각한 내가 유일하게 했던 건 일기쓰기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에는 학교에서 일기 검사를 했다.
매일 일기를 써서 선생님께 검사를 받았다.
처음에 일기를 쓴 건 단순히 숙제검사 때문에 일기를 쓴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일기쓰기는 숙제가 아닌 내 생각을 쓰는 일이 되었다.
그 후로 꾸준히 일기를 쓰면서 이런저런 상상력을 적어 보기도 하고 내 주변에 일어난 일들을 적기도 하고 내 감정을 적기도 했다.
그렇게 일기를 쓰고 몇 년이 지나 중학교 때 소설을 2쪽 썼는데, 동생들의 혹평에 포기했다.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길게 둘러보십시오-라는 것이 이번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점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한 쌍의 눈만 갖고 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입니다.
이런 멋진 직업, 이거 말고는 별로 없는 거 아닌가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016, 140쪽)
고등학교 때 또 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지 수학여행 에피소드를 소설처럼 각색해서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친구보다 친구의 언니가 더 재밌게 읽고 내 편지를 기다린 유일한 독자였다.
그렇게 30년을 묵은 내 소설쓰기 욕망은 다시 싹이 돋기 시작하지만 겁나서 그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