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에세이

연애소설 좋아하세요?

그림 그리는 작가 2021. 1. 4. 06:00

초등학교 때 교실 앞 모퉁이에 학급도서가 있었다.

내가 당시에는 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아니라 도서관이 있는지 기억을 못하겠다.

도서관이 흔하지 않아서 교실에 학급 도서관을 만들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한다.

 

집에 있는 책을 서너 권 학급에 기증하고 1년 동안 서로 같이 나눠 본 후에 학년이 올라가면 그 책들을 각각의 주인한테 다시 돌아갔다.

 

그중에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소설이 있었다.

어린 기억에 손에 쥐고 책을 읽어도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B5보다 작은 크기의 책일 것이다.

 

우리가 즐겨 본 책은 콩쥐팥쥐였다.

우리가 흔히 아는 아동도서 같은 적은 분량의 콩쥐팥쥐가 아니라 연애소설처럼 장편으로 쓴 콩쥐와 원님의 연애를 부각했던 소설로 기억 한다.

그 책의 주인은 누구 인지 모르지만, 4 여학생들 사이에서 그 책은 인기소설이었다.

책을 보기 위해서 내 순번은 네다섯 명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빌려 온 책은 연달아 두 번 읽을 수 없다.

1번 정독을 하고 다시 읽고 싶으면 다시 순번을 기다려야 했다.

책 두께도 꽤 두꺼웠는데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기 도서였다.

 

지금은 그 책 내용이 우리가 흔히 아는 콩쥐팥쥐처럼 두꺼비가 나오고 참새가 나오는 것만 기억나지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 진행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긴장감을 줬다는 것만 어렴풋하다.

 

박완서 지음 ⌜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2010

독자가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은 그게 명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읽을 당시의 마음상태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밑줄 긋는 일을 기피했다면 그것도 일종의 허영심 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여학교 다닐 때는 책이 귀할 때여서 그 때 읽은 대부분의 책은 빌려 보았다. 달콤한 연애소설은 순번을 정하고 돌려 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남들이 보던 책이니까, 특히 세계명작으로 알려진 책에서는 밑줄이 그어진 문장을 발견하는 수가 드물지 않았다. 남의 밑줄을 보는 게 당시 건방기 많은 소년에게는 은밀한 쾌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박완서 지음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2010, 153~154)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책이 나의 옛 기억들을 끄집어 내준다는 것이다.

까맣게 잊은 게 아니라 기억의 서랍 속 깊숙이 있는 기억을 자주 열지도 않고 열리지도 않았던 기억을 열어준다.

먼지가 잔뜩 앉은 기억에 입 안 가득 바람을 넣고 불어야 민들레홀씨처럼 흩어지는 먼지 속에서 내 기억을 희미하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