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좋아하세요?
초등학교 때 교실 앞 모퉁이에 학급도서가 있었다.
내가 당시에는 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아니라 도서관이 있는지 기억을 못하겠다.
도서관이 흔하지 않아서 교실에 학급 도서관을 만들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한다.
집에 있는 책을 서너 권 학급에 기증하고 1년 동안 서로 같이 나눠 본 후에 학년이 올라가면 그 책들을 각각의 주인한테 다시 돌아갔다.
그중에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소설이 있었다.
어린 기억에 손에 쥐고 책을 읽어도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B5보다 작은 크기의 책일 것이다.
우리가 즐겨 본 책은 콩쥐팥쥐였다.
우리가 흔히 아는 아동도서 같은 적은 분량의 콩쥐팥쥐가 아니라 연애소설처럼 장편으로 쓴 콩쥐와 원님의 연애를 부각했던 소설로 기억 한다.
그 책의 주인은 누구 인지 모르지만, 초4 여학생들 사이에서 그 책은 인기소설이었다.
책을 보기 위해서 내 순번은 네다섯 명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빌려 온 책은 연달아 두 번 읽을 수 없다.
1번 정독을 하고 다시 읽고 싶으면 다시 순번을 기다려야 했다.
책 두께도 꽤 두꺼웠는데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기 도서였다.
지금은 그 책 내용이 우리가 흔히 아는 콩쥐팥쥐처럼 두꺼비가 나오고 참새가 나오는 것만 기억나지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 진행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긴장감을 줬다는 것만 어렴풋하다.
독자가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은 그게 명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읽을 당시의 마음상태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밑줄 긋는 일을 기피했다면 그것도 일종의 허영심 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여학교 다닐 때는 책이 귀할 때여서 그 때 읽은 대부분의 책은 빌려 보았다. 달콤한 연애소설은 순번을 정하고 돌려 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남들이 보던 책이니까, 특히 세계명작으로 알려진 책에서는 밑줄이 그어진 문장을 발견하는 수가 드물지 않았다. 남의 밑줄을 보는 게 당시 건방기 많은 소년에게는 은밀한 쾌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박완서 지음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2010, 153~154쪽)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책이 나의 옛 기억들을 끄집어 내준다는 것이다.
까맣게 잊은 게 아니라 기억의 서랍 속 깊숙이 있는 기억을 자주 열지도 않고 열리지도 않았던 기억을 열어준다.
먼지가 잔뜩 앉은 기억에 입 안 가득 바람을 넣고 ‘후’ 불어야 민들레홀씨처럼 흩어지는 먼지 속에서 내 기억을 희미하게 본다.